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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인포그래픽] 가지지 못 한 사랑을 예술로 승화 시킨 시인 ‘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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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 기자 /디자인 이연선]

▶단테 (Durante degli Alighieri)
▶출생-사망 / 1265년 ~ 1321년
▶국적 / 이탈리아
▶활동분야 / 문학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예언자. 세계적으로 불후의 명작이라 불리는 장시 ‘신곡’을 남긴 사람.


- 베아트리체를 사랑하게 되다
단테는 1265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귀족 가문으로 태어났다. 그가 9세가 되었을 때, 동갑내기인 폴코 포르티나리 (Folco Portinari)의 딸 베아트리체를 처음으로 멀리서 보게 되었다. 단테는 천사처럼 청순했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때 느꼈던 사랑은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강렬한 감정이 되어 버렸다.

단테는 12세가 되던 1277년, 베아트리체가 아닌 젬마 도나티와 약혼을 하고 1291년에는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단테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여전히 베아트리체였고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베아트리체가 24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그의 그런 감정들은 더욱 증폭되었다.

- 스콜라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우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1275년에서 1294년에 걸쳐 약 20여 년간 신학을 비롯하여 다방면에 걸쳐 교육을 받았다. 특히 브루네토 라티니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중세의 스콜라 철학과 스콜라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워 그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세웠다.

- 오랜 망명 생활을 하게 되다
단테는 정치인으로서의 삶도 살았다. 그는 1290년대에 피렌체와 피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당파 싸움에 가담하여 1300년에는 피렌체 시협의회 회장(Priorat)직을 맡기도 했다. 단테는 로마교황을 옹호하는 궬피(Guelf)당을 지지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받드는 기벨리니(Ghibelline)당과 적대관계에 있었는데 궬피당이 승리하여 두 당의 전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궬피당은 흑당과 백당, 두 개의 파로 나뉘어 다시 당쟁을 하게 되는데 백당에 속해 있던 단테는 여기서 패배하여 추방을 당해 망명생활을 하게 됐다.

단테는 백당의 남은 사람들을 이끌어 다시 도전하였지만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다. 이에 흑당은 단테에게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면 사면을 내려주겠다 했지만 단테는 이를 치욕적으로 여기고 응하지 않았다. 흑당은 결국 단테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고 단테는 라벤나에서 귀도 노벨로(Guido Novello)의 보호 하에 살다가 말라리아로 사망하게 되었다.

- 불후의 명곡 신곡을 남기다
신곡은 단테가 1308년부터 죽은 해인 1321년 사이에 쓴 서사시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단테 자신과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베아트리체이다.

신곡은 35세가 된 단테가 어두운 숲 속을 헤매다 짐승들에게 앞을 가로 막혀 절망에 빠져 있던 중 베르길리우스에 이끌리어 지옥과 연옥을 보게 되고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지고 나서 베아트리체를 만나 그녀에게 안내되어 천국에 간다는 기독교 사상에 기반한 이야기이다.

신곡은 당시의 신학과 철학, 윤리적 고찰과 천문학적 세계관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사후세계에 대한 중세의 종교와 세계관을 보여준 최정점에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불과 9살에 사랑에 빠진 베아트리체에 대한 마음을 신곡에서 성스러운 인물로 표현했던 단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했던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그에게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신곡이라는 불후의 명곡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