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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교양

[지식용어] 105년 전 고향 떠난 청와대불상,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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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문선아 / 디자인 최지민]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병탄(倂呑 : 남의 재물이나 영토를 강제로 빼앗아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된 지 2년 뒤인 1912년.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초대 총독은 경주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당시 경주금융조합 이사인 오히라 료조(小平亮三)라는 일본인의 집을 방문하게 됐다. 

그의 집 정원에서 총독의 눈에 들어온 하나의 불상. 총독이 불상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오히라는 불상을 서울 남산에 위치한 총독 관저로 옮겨놓았고, 이를 본 데리우치 총독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27년. 불상은 총독부 관저를 새로 지으며 현재의 청와대 경내로 옮겨졌다.


이 불상의 정식 명칭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24호인 ‘석조여래좌상’이다. 8세기 중반 무렵의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최초로 경주 남산의 옛 절터에서 발견됐고, 석굴암 본존불과 생김새가 똑같지만 높이 1.16m로 3분의 1 크기다. 서울시가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할 정도로 탁월한 조형미를 갖춰 ‘미남 불상’ 또는 청와대에 위치하고 있어 ‘청와대 불상’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본부와 신라문화원, 경주발전협의회 등 경주지역 문화·시민단체들은 이 불상을 원래의 자리인 경주로 되돌려 놓고자 결의문을 채택하여 정부에 이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실 석조여래좌상의 존재가 본래부터 많이 알려져 있던 것은 아니다. 청와대 보안구역에 있어 그 존재가 일반인은 물론 청와대 관계자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4년부터 그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1993년에 일어난 부산 구포역 열차전복 사고.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 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며 민심이 흉흉해지자 민간에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던 불상을 치웠기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가 떠돌았고 급기야는 불상에 대한 존재에 대해 알려야 하는 분위기까지 온 것이다. 

여론이 좋지 않자 청와대는 고심 끝, 1994년 10월 27일 출입기자들에게 불상이 제자리에 있다고 전했고 세상에 공개됐다.

그리고 최근 청와대 불상을 원래의 자리인 경주로 옮겨달라는 요청이 있자 문재인 대통령은 문화재청에 '경주 원위치 검토'에 대한 사실여부 확인 등 지시를 내렸다.

문화재청은 석조여래좌상이 경주 남산의 불상이나 그 지역 암석과 재질이 같은지 등을 알아보며 사실 여부를 알아볼 계획이다. 청와대 측은 조사 이후 경주에 있던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문화재청과 협의해 원래 위치에 돌려놓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해외로 밀반출된 문화재를 국내로 환수한 사례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국내에서 이와 같은 사례로 옮겨진 문화재에 대한 반환 요청은 이례적이다. 문화재청의 철저한 조사 후 청와대 석불좌상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그 가치가 역사적으로 길이길이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