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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최초 지폐 발행’의 요한 팔름스트루흐, 감옥에서 생 마감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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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 기자/디자인 이연선]

▶ 요한 팔름스트루흐 (Johan Palmstruch)
▶ 출생-사망 / 1611 ~ 1671
▶ 국적 / 네덜란드
▶ 활동분야 / 사업가 및 금융가

요한 팔름스트루흐는 네덜란드의 혁신적인 사업가이자 금융계 종사자로 스웨덴으로 건너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스웨덴 중앙은행의 전신 스톡홀롬 은행(Stockholms Banco)을 설립, 최초로 지폐를 만들었다.


- 은행 설립을 위한 끈질긴 설득

요한 팔름스트루흐는 네덜란드의 사업가이자 금융가로 이름을 떨치다 이웃나라 스웨덴에 큰 포부를 두게 된다. 바로 금융과 무역이 활발하던 스웨덴에 은행이라는 기관을 만들기로 구상한 것이다.

그렇게 1947년 스웨덴에 건너간 요한 팔름스트루흐는 금융업에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아 전국 무역협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자신감을 얻자, 자신의 구상을 제안서로 만들어 당시 스웨덴 국왕(Charles X Gustav)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생소한 개념인지라 스웨덴 국왕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요한 팔름스트루흐는 이에 포기하지 않고 더욱 구체적인 제안서를 만들어 3번째 제안서에 이르러 국왕에게 은행의 이윤 중 반을 줄 것을 약속하는 내용을 넣으며 결국 승낙을 받아냈다.

- 스톡홀롬 은행 설립과 최초 지폐 발행

그렇게 스웨덴 국왕의 승낙을 받은 요한 팔름스트루흐는 자신의 계획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여1657년 스톡홀롬 은행을 설립했다. 단순하게 ‘금과 은’ 등을 맡기는 기능을 넘어 당시 생소한 개념이던 은행 계좌와 대출 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한 가지 장벽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출과 대출 등 거래에 있어 금과 은화는 가치 비교와 사용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을 이어가던 요한 팔름스트루흐는 마침내 큰 단위의 액수까지 품을 수 있는 종이 지폐(당시 개념으로는 ‘신용 종이’)를 만들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 너무 큰 욕심이 불러온 비극

그렇게 큰 호응을 불러 모은 요한 팔름스트루흐는 스톡홀롬 은행의 사업을 더욱 확장하고 특히 대출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예금을 해오고 그럴 때마다 더욱 많은 사람과 기업들에 대출을 승인해 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과도하게 대출을 해주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인출을 요구할 때, 정작 은행 내부에는 대출로 인해 돈이 부족하면서 인출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 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럴 때마다 지폐를 과도하게 발행했고 약속 어음까지 만들어 상황을 모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1664년 결국 스톡홀롬 은행은 폐쇄, 운영권은 스웨덴 국회의 감독 아래 스웨덴왕립재정은행에 넘어갔다.

한편 무리한 영업과 부도를 낸 책임을 물어 요한 팔름스트루흐는 무려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수감되었으며 그 후 1671년 60세로 차가운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세계적 금융 기관의 전신인 스톡홀롬 은행을 설립한 요한 팔름스트루흐. 그가 일찍이 도입한 지폐와 대출, 어음 등의 개념은 현재에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지구촌 경재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무리하고 위험한 사업 운영 끝에 무거운 처벌까지 받아야 했던 요한 팔름스트루흐의 삶은 우리 사회와 경제 분야에 또 하나의 교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