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지영 / 디자인 이연선 pro]
▶ 잔 베르니니 (Gian Lorenzo Bernini)
▶ 출생-사망 / 1598년 12월 7일 – 1680년 11월 28일
▶ 국적 / 이탈리아
▶ 활동분야 / 예술-조각, 건축
▶ 주요작품 / 《플루토와 프로세르피나》, 《아폴론과 다프네》, 루이14세의 흉상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건축가로 대리석을 정교하게 조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교황의 총애로 성당의 조각 제작에 많이 참여했으며, 산피에트로대성당 건축도 담당했다.
- 강한 개성과 재능을 가진 잔 베르니니
잔 베르니니는 열세 자녀 중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아버지 피에트로는 훌륭한 예술가로서, 아내 안젤리카의 고향인 나폴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하는 일이 돌을 만지는 작업이다 보니 베르니니도 어렸을 때부터 돌을 쪼고 다듬는 놀이를 했다. 현재 남아 있는 베르니니의 최초의 작품 〈아기 제우스에게 젖을 먹여 키운 아말테아 염소〉는 베르니니가 열한 살 무렵에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고대 조각상으로 착각했을 정도다. 또한 베르니니는 자화상에 해당하는 〈저주 받은 영혼〉을 만들 때 절규하는 표정을 잡아내기 위해 자기 팔을 불에 태우면서 거울로 자기 얼굴을 들여 볼 정도로 엄청난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 역동적인 조각들을 만들어내다
보통 조각 작품은 정지한 한 순간을 포착하지만, 베르니니는 역동적인 모습들을 조각으로 표현해냈다. 베르니니의 〈다비드〉는 몸을 꼬아서 골리앗을 향해 돌을 던지는 동작을 잡아내어 극적인 내러티브를 전한다. 이 밖에도 베르니니는 〈페르세포네의 납치〉, 〈아폴론과 다프네〉와 같은 인상적이고 역동적인 조각들을 만들어냈다. 이런 걸작들 덕분에 베르니니의 예술적 명성은 더욱 확고해졌고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사람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으며 교황과 국왕을 비롯해 유럽 명사들이 그에게 흉상 제작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총감독과 이 외에 조각, 그림, 희곡 대본 등 다방면에서 작업을 해나갔다.
- 베르니니에게 찾아온 위기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든든한 후원을 받았던 베르니니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바로 우르바노 8세가 별세하고 인노첸시오 10세가 즉위한 것이다. 새로 즉위한 교황은 예술에 냉담했다.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성당의 종탑 제작 시 성당 전면 벽에 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르바노 8세에서는 문제없이 지나갔던 일이 인노첸시오 10세가 즉위하자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결국 교황은 베르니니에게 사비를 들여 지금까지의 공사를 철거하라고 명령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베르니니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그는 결국 집에 박혀 두문불출하기에 이른다.
- <테레사 성녀의 황홀>로 다시 명예를 찾다
하지만 베르니니는 그대로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윽고 많은 걸작들을 만들어냈고 이에 종탑으로 떨어진 명예도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특히 <테레사 성녀의 황홀>이란 작품을 통해 그는 명예를 완전히 회복했으며 새로운 교황 알렉산데르 7세가 들어서면서 베르니니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새 교황은 도시계획을 통해 로마를 세계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여기에 베르니니는 활발히 참여한다. 이후 파리를 방문했다가 돌아온 베르니니는 더욱 확신을 가지고 로마의 성스러움과 장대함을 표현하며 성 베드로 성당을 작업해나간다.
-예술의 왕 잔 베르니니 여기 살다가 묻히다
베르니니는 죽기 2주 전까지도 작업을 할 정도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기운이 넘쳤다. 그가 죽기 전의 작품들은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감돌 정도였다.
베르니니는 뇌졸중으로 죽기 며칠 전부터 오른팔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마지막을 직감한 그는 자신이 죽고 나면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안치해달라고 했고 그의 소망대로 그는 그곳에 묻혔다.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장례식은 가족만 모여 조촐하게 치뤄졌다. 베르니니 묘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었는데 19세기 말 후대인은 그를 기려 ‘교황도, 군주도, 수많은 사람도 머리를 조아린 예술의 왕 잔 베르니니 여기 살다가 묻히다.’라는 비문을 세워 주었다.
잔 베르니니는 뒤에서 그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천재적인 재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로마에는 그의 숨결과 손길이 닿은 수많은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다. 명실공히 17세기 로마의 바로크 미술과 건축 발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던 베르니니. 우리가 지금 바티칸을 찾아가 놀랄 수 있는 것은 그의 천재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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