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태웅 기자/디자인 이연선]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
▶출생-사망 / 1913.12.18. ~ 1992.10.08.
▶국적 / 독일
▶활동분야 / 정치
하나의 독일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독일의 정치가 ‘빌리 브란트’
-‘반 나치 투사’ 국적도, 이름도 포기한 남자
빌리 브란트, 사실 그의 본명은 ‘헤르베르트 프람’이다. 그는 1933년 나치정권이 들어선 이후 종전 선언 때까지 주로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34년 나치즘에 대항하는 비합법적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이름을 빌리 브란트로 바꾸고 나치에 대항해 투쟁했다. 정치 망명객으로서의 빌리브란트는 노르웨이, 스웨덴 등 여러 유럽 국가에서 파시즘의 위험을 알리고 사회주의 운동을 벌이는 등 반 나치즘을 전파했다. 1933년에서 1945년까지 나치 독일을 떠나 국적을 바꾸고 노르웨이 군에서도 복무했던 그는 이후 서독 정치입문 초기 ‘어려운 시절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서독 SPD를 국민정당으로, 낯선 정치인 빌리
배신자라는 낙인과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브란트는 정치가로서 성공했다. 1949년부터 그가 사망한 1992년까지 서독 연방의회 의원, 서베를린 시장, 외무부장관, 연방총리 등 약 50년 동안 서독 정치계에 몸담았다. 그의 정치생명이 길었고 화려했던 이유는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독일 사민당 내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현대화’에 가장 앞섰기 때문이다. 그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사민주의 정당들의 영향을 받아 독단주의를 지양하고 계급해방을 지향했다. 당시 서독에서 그는 낯선 정치인이었지만, 그의 영향으로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사민당이 계급정당의 길을 포기하고 ‘국민정당’의 길로 전환했다.
-진심은 통한다. 전범국 수장의 사죄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는 서독의 총리로서 폴란드 바르샤바의 추모지에서 무릎을 꿇는다. 이는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닌 즉흥적인 행위였다. 그는 헌화를 하는 순간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고 “말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이 행하는 바로 그것을 행했다”고 고백했다. 물론 본인이 직접 일으킨 전쟁은 아니었지만, 그는 전범국의 수장으로서 과거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이 행위는 서독 내에서 평가가 크게 갈렸는데 사실 부정적이거나 냉소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그의 ‘무릎 꿇기’ 행위가 일본 정치가들의 전쟁을 변호했던 태도와 비교되면서 큰 감동과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통찰, 대결에서 화해로 동방정책
동독에 일방적이고 우호적이기만 한 정책이라고 불리는 빌리 브란트의 주요 정책, 동방정책. 사실 이런 편견과는 달리 동방정책은 동방에 맞서 싸우면서 시작됐다. 빌리 브란트는 서베를린 시장 시절(1957~1966년)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자유를 옹호했으며, 1961년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건설했을 때 그는 당시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인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와는 달리 단호하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수년간 공산주의에 맞서 최전선에 있으면서, 그는 공산주의 지배자들을 단순히 비난하고 ‘대결’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통찰한다. 그리고 기존 아데나워 총리 시절 동독에 적대적인 정책인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면서 동방정책의 기조를 새롭게 바꾸기 시작했다.
-노벨 평화상, 작은 발걸음이 통일의 길 개척
서독의 동방정책은 여러모로 유럽과 전 세계에 영향력을 줬다. 대결과 냉전 그리고 분단이 계속되던 시기에 화해를 위한 하나의 작은 발걸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을 편 그 공을 인정받아 빌리브란트는 197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수상 이후에도 그는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72년 동서독 간 기본조약을 맺었으며 계속해서 이를 유지해 화해와 협력의 기반을 다졌다. 이 조약을 기반으로 동서독은 여러 분야에서 교류하였고, 결국1990년 10월 3일 이를 계승한 헬무트 콜 총리의 집권 시 독일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평화가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평화가 없으면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가 살아생전 남긴 말이다. 평화를 위장하는 말도 위험하지만 평화를 향한 걸음이 전혀 없는 것 또한 위험할 수 있다. 그의 작은 발자취를 통해 현재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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