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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교양

인권보다는 후원? 자극적인 장면으로 동정 유도하는 ‘빈곤 포르노’ [지식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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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 뼈만 앙상하게 남고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아프리카 지역의 아기에게 온정을 베풀어 달라는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광고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측은함을 느꼈는가?

우리는 이런 영상을 굉장히 오랫동안 접해왔다. 때문에 아프리카에 대한 대표적인 이미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너무나도 가난하여 더러운 물을 마시고 온갖 병에 걸려 있으며 피죽조차 없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모습을 말하곤 한다.

물론 세계에는 이런  극한 상황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떠올리는 이 이미지가 아프리카의 전체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까? 

힘든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다가 아니다. 희망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더욱 건강하고 발전적인 후원이 가능하게 해준다(위키미디아)


최근 유럽연합(EU) 등 서구권에서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의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빈곤 포르노란 빈곤이나 질병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모금을 유도하는 방식을 말한다. 

빈곤 포르노라는 개념은 국제적 자선 캠페인에서 시작되었다. 국제적 자선 캠페인이 활발하게 시작되던 1980년대, 한 방송국은 빈곤 지역의 실상을 생방송을 통해 그대로 사람들에게 알려 이들의 어려움과 기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기획을 하였다. 

해당 방송에서는 한 아프리카 아이가 출연했는데 배만 불뚝 나온 피골이 앙상한 아이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 아이의 몸에는 수 백 마리의 파리 떼가 달라붙어 있었다. 이 참혹한 모습의 영상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그로 인해 수억 달러에 이르는 기록적인 금액이 모금되었다. 

이 방식이 모금에 효과적인 것을 확인하자 다른 기부단체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 방송국에서 에티오피아의 식수난에 대한 기부 캠페인 영상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더러워야 할 식수가 생각보다 너무 깨끗하다는 이유로 출연하는 소녀에게 일부러 썩은 물을 마시게 하는 ‘연출’을 한 것이 발각된 것이다. 이 행위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빈곤 포르노'라는 개념이 발생하며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발생하게 되었다.   


빈곤 포르노는 가난과 질병에 대한 모습을 극대화 하여 자극적이기 때문에 후원금의 모금을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모금을 이끌어낸다는 이유로 가난을 ‘연출’하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행위이며 기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기만행위이다. 

그리고 영상에 출연하는 피후원자들에게 부당한 행위를 강요하거나 자존감을 엄청나게 떨어뜨리므로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명목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인데 실제로는 이들을 더욱 고통에 빠뜨릴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피 후원자들은 후원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후원 단체가 요구하는 것들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희귀 질병을 앓고 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런 처지를 남에게 알리는 것은 굉장히 부끄럽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금이라는 명목 하에 이들의 신상은 최악의 모습만을 보이면서 광고를 통해 널리 퍼져나간다. 이로 인해 사회에서 피 후원자들은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불쌍한 존재라는 편견까지 얻게 된다. 

빈곤 포르노는 피 후원자들만 고통습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극적으로 연출된 광고나 영상이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반 강제적으로 반복 노출되면 보는 사람들에게 큰 피로감과 심적 불편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빈곤 포르노는 자극적인 내용을 통해 단기적인 모금에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때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느끼는 자극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더욱 자극적인 장면을 계속적으로 만들지 않는 한 효과는 미미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유린 문제는 세계의 장벽에 막힐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돕는 광고를 만드는데 무조건 동정심을 유발하자는 것은 이미 철이 지난 구시대적 발상이다. 좌절과 슬픔만을 보여주는 것 보다는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건강하고 발전적인 후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고급 기술을 개발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