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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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목과 타원형의 얼굴, 우아하고 애수가 깃든 여인의 초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 부르주아 출신임에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파리의 뒷골목을 전전하다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 젊은 예술가는 '몽마르트의 보헤미안'이라고 불리며 벨 에포크 시대 가난한 젊은 예술가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대표작으로 <첼로 연주자>와<여인 두상>, <잔 에뷔테른의 초상> 등을 그린 예술가. 바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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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인 모딜리아니는 그의 출생으로 인해 집이 망하는 것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모딜리아니가 태어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집안이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방 행정관이 물건을 압수하기 위해 그의 집에 들어갔을 때 모딜리아니의 어머니는 모딜리아니를 낳고 있었습니다. 이때 옛 속담에 '임신한 여자나 갓 태어난 아기 엄마의 침대는 뺏지 않는다'는 풍습이 있어 값비싼 물건을 어머니 옆에 두어 약간의 재산을 남길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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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비극적인 생활은 태어나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늑막염과 장티푸스로 고생한 모딜리아니는 사실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를 정규교육을 받길 원했지만, 건강상 쉽지 않았고 또 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그의 희망에 따라, 1899년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 선생 중 한명인 구글리엘모 미켈리에게 그를 보내 미술 공부를 시키게 됩니다.
그러다 1906년 모딜리아니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심지 파리에서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모딜리아니는 몽마르트의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작은 스튜디오를 빌려 생활했는데 1년이 채 되지 않아 말쑥했던 외모는 유랑하는 사람처럼 초라해졌고, 생활이 어려워져 빈민가를 돌아다니며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됩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초기에는 하루여 100여장의 그림을 그리는 등 엄청난 속도로 그림 작업을 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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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9살의 에뷰테른을 만나며 함께 살게 됩니다. 에뷰테른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함께 생활을 했고... 같은 해 겨울, 모딜리아니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인 개인전을 열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화가 생활도 평탄하지 않았던 것인지... 오픈한지 몇 시간 되지 않아 유리 전시장에 걸려있던 누드 작품으로 인해 경찰이 제재했고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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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니스로 떠난 두 사람은 딸을 낳고 함께 파리로 돌아가 서로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그들만의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하지만 평온한거 같았던 그의 삶에 또 다시 비극이 찾아옵니다. 1920년, 모딜리아니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게 된 겁니다. '결핵 수막염'으로 의사조차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으며 그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침대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해 모딜리아니는 세상을 떠났고 이를 견디지 못한 에뷰테른은 그가 죽은지 이틀 후, 5층에서 뛰어내려 뱃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납니다.
◀MC MENT▶
그는 입체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형식이 유행하던 시절 어느 노선도 따르지 않았고, 미술사에서 어느 쪽으로도 분류될 수 없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알코올과 마약,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순수하고 깊은 감성을 끌어낸 모딜리아니. 보답 받지 못한 생애가 이제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제작진 소개
책임프로듀서 : 한성현 / 구성 : 박진아 / CG : 최지민 / 연출 : 홍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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