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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꿈과 사랑을 그린 낭만 화가 '마르크 샤갈'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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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 김아련 / 디자인 이연선]

▶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 출생-사망 / 1887년 7월 7일 - 1985년 3월 28일
▶ 국적 / 러시아 (프랑스로 귀화)
▶ 활동 분야 / 화가

회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화가 ‘샤갈’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 미술 공부를 하며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샤갈
샤갈은 1887년 벨라루스공화국 비테프스크에 있는 유대인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카츠키 샤갈은 청어상인 가게에서 일을 했고 어머니는 소규모 잡화상을 운영하며 9형제를 보살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란 샤갈은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격려를 받으며 미술을 공부할 수 있었다.

샤갈은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기 위해 러시아의 수도이자 예술의 중심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샤갈은 사진 수정 작업 조수로 일하며 간판 그리는 작업을 했는데, 이 작업은 훗날 많은 작품들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 후 1909년에는 즈반체바 학교에 입학해 레옹 바크스트의 지도를 받았다. 샤갈은 스승의 영향으로 신야수주의적인 작품을 선보였으며 파리로 갈 결심을 할 수 있게 된다.

- 파리지앵으로 살며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든 샤갈
샤갈은 화가로서 더욱 성장하기 위해 1910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 샤갈은 이런 파리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담아 ‘나의 두 번째 비테프스크’라 불렀고, 이름도 본명인 ‘모이셰 샤갈’에서 프랑스식 이름인 ‘마르크 샤갈’로 바꿨다.  

그는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며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또 그는 기욤 아폴리네르와 로베르 들로네, 페르낭 레제와 같은 아방가르드 유명 인사들과 친교를 가지며 새로운 영역을 넓혀갔다. 이 시기에 야수주의, 입체주의, 오르피즘 등 새로운 작업방식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었다.

- 예술계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된 샤갈
샤갈은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 머물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이자 오랜 친구였던 벨라 로젠펠트를 그리워했다. 결국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중 비테프스크로 귀국해 다음해인 1915년에 벨라 로젠펠트와 결혼했다. 그녀는 파리와 마찬가지로 샤갈의 예술세계에 큰 영감을 불러 일으켜 <생일>(1915), <술잔을 들고 있는 이중 초상>(1917) 등의 작품에서 그녀의 초상을 확인할 수 있다. 결혼 후에도 샤갈은 항상 새로운 작업들로 바쁘게 활동했고 1926년 뉴욕에서 첫 전시회를 열게 된다. 이 전시회를 시작으로 그의 국제적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샤갈 가족은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은 샤갈은 미국에서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망명해온 다른 미술가들과 함께 작품을 전시했고 무대장치 디자인도 작업했다. 샤갈은 전쟁이 끝난 뒤 뉴욕과 시카고는 물론 파리, 런던 등 유럽의 대도시에서 주요 전시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샤갈
화가로서 명성을 쌓고 인정받은 샤갈은 1946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40여 년 동안 작업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그리고 1948년 프랑스로 돌아와 오르주발에 완전히 정착했다. 이후 그는 회화뿐만이 아니라 도자기, 석판화는 물론 회당이나 성당에 설치할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작업하면서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샤갈은 1977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가장 명예로운 훈장으로 꼽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루브르박물관에 작품이 걸리는 영광을 안았다.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은 남프랑스의 생폴드방스에서 보냈고 1985년 97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창조하고 살아있는 동안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던 샤갈은 오늘날까지도 예술계에 큰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