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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용기의 목소리’ 니나 시몬, 재즈 통해 인종차별을 노래한 가수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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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 이유진 수습기자/ 디자인 이연선]

▶ 니나 시몬 (Nina Simone)
▶ 출생-사망 / 1933년 2월 21일 - 2003년 4월 21일
▶ 출생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타이론
▶ 활동분야 / 가수

흑인계 미국인 재즈 가수 나나 시몬은 훌륭한 피아노 실력과 음악성으로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인종차별의 아픔을 노래하며 미국 내 공민권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어려서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다
니나 시몬의 본명은 유니스 캐슬린 웨이먼으로 193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며 재능을 보였고 고향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줄리아드학교(Juilliard School)에 진학해 음악 교육을 받게 된다. 시몬이 12살 때 지역 교회에서 클래식 공연을 하게 됐는데, 앞줄에 있던 시몬의 부모가 백인에게 밀려 뒤쪽으로 쫓겨나자 부모의 자리가 다시 앞으로 옮겨질 때까지 연주를 거부했다. 그렇게 고집있던(?) 시몬은 출중한 실력으로 지역에서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게 된다.

- 흑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시험에서 떨어지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공부하던 시몬은 명문 커티스음악원에서 공부하기 위해 17살에 입학시험을 본다.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으나 불합격하게 되는데 시몬은 이를 인종 차별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시몬은 클래식을 계속 공부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1950년 재즈 가수로 데뷔한다. 이때 그녀는 클래식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가족의 반대 때문에 본명이 아닌 니나 시몬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니나’는 소녀라는 뜻의 스페인어이며 ‘시몬’은 프랑스 여배우 시몬느 시뇨레의 이름을 땄다.  

- 재즈로 흑인의 아픔을 노래하다
1960년대 미국사회는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하는 등 흑백갈등이 극에 달했다. 시몬은 이때부터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노래를 발표하며 20세기 흑인 인권 향상에 적극 참여한다. <미시시피 갓댐(Mississippi Goddam)>이라는 곡은 1963년 버밍햄 침례교회에 폭탄이 터져 흑인 4명이 사망한 사건과 미시시피 앨라배마 남부지역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흑인이 살해당한 사건을 비난한 곡이다. 이 곡은 흑인인권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고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한편 남부 주에서는 금지곡이 되고 음반상들은 음반 판매를 거부했다.  

- 전 세계를 돌며 인종차별에 대해 노래하다
미국의 사회적 혼란 속에 시몬의 정치적이고 직설적인 가사는 시위 현장의 구호가 되며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지만, 한편 가수로서의 삶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시몬의 정치 성향 때문에 음악 업계는 보이콧을 했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해보지만 이전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시몬은 미국을 떠나 프랑스, 영국, 라이베리아, 스위스 등을 공연을 하면서 떠돌았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음악으로 세계 각지에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알렸다.

- 흑인을 위해 노래하던 시몬, 숨을 거두다
세계적인 가수로서 니나 시몬은 재즈를 비롯해 블루스/소울/가스펠/클래식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고,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노래로 미국 내 공민권운동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하지만 소속사와 계약이 종료되고 남편과 이혼을 겪고 1993년 유방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다. 세상을 떠난 2003년, 죽음 직전에 커티스음악원에서는 시몬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했다. 시몬은 당뇨병으로 인한 조울증을 앓았으며 2003년 4월 21일 자던 중 숨을 거두었다. 시몬은 유언에 따라 화장 후 아프리카에 뿌려졌다.


당당히 꿈을 이루고 흑인으로서 인종차별에 맞서 싸워 온 실력파 뮤지션 니나 시몬. 그녀의 굵은 중저음의 보컬이 들려주는 평등에 대한 메시지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대중의 마음을 울리며 사랑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