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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 보편적이라 더 아픈, 여성 차별과 상처를 드러내다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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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승재] 문학이야기는 매주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의견을 공유함으로써 독자와함께 소통하고자 만들어진 콘텐츠로, 책이나 글에 점차 멀어지고 있는 현대인들의 지(知)를 고취시키고자 제작됩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제작되는 콘텐츠인 만큼, 간혹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한 경찰서 앞, 여성대상 범죄 예방을 위한 ○○동 ‘꽃길’ 걷기라는 글귀가 적힌 핑크색 입간판이 서 있다. 이 입간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 사회에는 여성을 대표하는 몇 가지 상징물들이 있다. 입간판에서 보이는 핑크색과 꽃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 우리 사회의 수많은 김지영들.

우리 사회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러한 상징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칭찬으로 여기는 표현들. 일상에서 사용되는 이러한 상징과 표현들이 오히려 여성을 비하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폭력이라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여성들은 불편한 현실에 대해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처럼 불편함과 답답함으로 점철된 여성들의 삶을 지극히도 평범하게 하지만 날카롭게 풀어낸 소설이 있다. 바로 <82년생 김지영>이다.

82년 생 김지영. 이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왜 하필 82년생이며, 이름은 김지영일까. 그 답은 보편성에 있다. 82년생은 현재 35살, 아래로는 자녀가 위로는 나이가 지긋한 어머니가 있을 나이다. 82년생인 주인공은 직장을 다시는 사회인이자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부인, 누군가의 엄마로서 가장 많은 역할을 부여받은 우리 시대의 여성을 대표한다. 

또한 이름에서도 그 보편성은 드러난다. 82년도에 태어난 아이들 중 가장 많이 지어진 이름이 바로 ‘김지영’이다. 김지영이라는 이름을 통해 소설 속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가 소설 속의 이야기만이 아닌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사례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보통 소설 속 주인공은 특별하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 속의 주인공은 지극히 평범하고 보편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더 큰 충격을 준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제목은 평범함과 보편성을 함축함으로써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편견이 엄청나게 널리 퍼져 있음을 함축한다. 

#. 평범한 일상 속 숨어있던 차별과 편견.

소설 속 차별과 편견은 사실 엄청난 사건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벌어진다. 학창시절 ‘남자아이가 괴롭히는 건 여자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다’라는 선생님의 말도, 면접을 보러 가는 택시 안에서 ‘첫 손님은 여자를 안 태운다’는 기사의 말도, 몸이 아파 간 병원에서 ‘요즘은 세탁기, 청소기가 다 해주지 않냐’는 의사의 말도 모두 여성들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들이었다. 심지어 ‘육아도, 집안일도 내가 많이 도울게’라는 남편의 진심어린 말에도 육아와 집안일은 여성의 영역이라는 차별적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35년간의 김지영의 삶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정, 회사, 사회에서 김지영들이 숱하게 겪었던 보편적인 차별과 편견을 누구보다 담담하게 마치 체념한 듯 한 목소리로 풀어낸다. 그리고 김지영의 삶 속에 중간 중간 등장하는 통계 수치와 기사들은 이러한 사례가 보편적임을 뒷받침 해준다. 

사실, 소설 속 엄청난 사건에서 오는 상처와 충격은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보편적 일상 속 누구든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상처와 충격은 훨씬 더 피부에 와 닿게 느껴진다. 이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 김지영의 병은 회복이 될까.

소설 속 김지영은 아프다.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꽁꽁 싸맨 채 살아온 나날들로 인해 생긴 마음의 병이었을까. 때로는 어린 딸이, 때로는 학교 선배가, 때로는 어머니의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다른 이가 됐을 때 김지영은 오히려 아프지 않다. 온갖 차별과 편견 앞에서도 제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김지영은 학교 선배,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부당한 대우에 항거한다.

소설에서는 김지영의 증상이 완치됐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김지영의 병이 회복이 되길 바라야 할까. 사회에 만연한 여성 차별과 편견에 저항하는 모습은 여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필요한 모습이지만, 그것이 본인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누군가 목소리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차별과 편견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길 원한 것은 아닐까.

사실 <82년생 김지영>은 상당히 불편한 책이다. 우리 사회의 아픈 구석을 계속해서 찌르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소설의 말미에서도 아픈 김지영을 상담한 의사는 자신도 비슷한 처지의 아내가 있기에 ‘김지영을 잘 이해한다’고 자부했지만, 육아 문제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들 두고 후임은 미혼으로 뽑아야겠다고 이야기 한다. 아직 우리 사회의 여성 차별과 편견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무지하다는 것을 마지막까지 이야기한 것이다.


상처는 덮어두고 숨기면 오히려 더 덧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82년생 김지영>은 남성들에게 더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김지영의 삶 속에 드러난 편견과 차별이 혹시나 나도 모르게 나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82년생 김지영이 나의 딸, 나의 부인, 나의 엄마의 이야기라고 생각해본다면 우리 사회에 앞으로 여성 차별과 편견으로 인한 상처가 조금씩 줄어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