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승재] 문학이야기는 매주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의견을 공유함으로써 독자와함께 소통하고자 만들어진 콘텐츠로, 책이나 글에 점차 멀어지고 있는 현대인들의 지(知)를 고취시키고자 제작됩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제작되는 콘텐츠인 만큼, 간혹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24시간이 모자라~’ 노래 속 가사에는 상대를 사랑하고 떠올리는 시간이 모자라다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실상 일하기도 24시간이 빠듯하다. 지옥철이라 불리는 출근길을 뚫고,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하루를 보내고, 심지어 퇴근 후에도 집에서 일을 하느라 하루가 다 지나간다.
일만 하다 보니 친구를 만날 여유도, 아이와 함께 놀아줄 시간도, 내 미래에 대해 상상할 시간조차도 내기 힘든 현실. 이렇게 일에 파묻혀 살다보니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건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쁘고, 시간이 모자랄까.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왜 그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이런 의문에 답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있다. 바로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다.
소설 <모모>는 ‘시간’에 대한 책이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능력이 있는 모모는 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회색신사’가 나타난 뒤로부터 친구들은 하나 둘씩 모모를 떠나기 시작했다. 회색신사는 사람들에게 놀이, 대화, 상상, 사랑 등은 불필요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불필요한 것을 하는 시간을 저축해 나중에 돌려받으면 노후에는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사람들을 꾀어낸다. <모모>에서는 삭막하게 변해버린 친구들을 구하기 위한 모모의 모험을 그려내며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 모모의 능력은 ‘여유’였다
모모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능력’이다. 마을 사람들은 일이 안 풀리거나 고민이 있을 때마다 모모를 찾아갔고, 신기하게도 모모를 만나고 난 후에는 표정이 밝아져서 돌아왔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모에게 가보게!’를 입에 달고 살았다.
‘경청’이 무슨 특별한 능력일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느긋하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적이 있는가. 경청이라 함은 나의 시간과 정신을 온전히 그 사람에게 쏟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일에 치여 그런 시간마저 아깝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경청이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대화를 하고 돌아와도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어쩌면 모모의 특별한 능력은 경청이 아닌 ‘여유’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모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정말 모모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다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24시간이지만 모모는 시간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던 것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를 가지는 모모의 능력이 마을 사람들이 모모를 찾는 이유였고, 시간을 빼앗는 회색신사들이 모모를 두려워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 여유는 저축이 불가능하다
회색인간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저축하라며 현혹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이란 ‘여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회색 인간은 사람들에게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말고 저축을 해서 미래에 그 시간을 누리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그 말에 혹해 그동안 누려왔던 여유를 버린 채 일에만 몰두한다. 여유로운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모습은 회색인간의 말에 현혹된 소설 속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고생하고 나면 미래에는 좀 더 편한 삶을 살겠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비단 당신뿐일까? 지금이 아닌 미래의 성공, 미래의 만족을 위해 오늘의 여유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삶은 미래의 여유를 만나기 매우 힘들다. 일은 끊이지 않고 내일의 여유를 위해 오늘을 고생하는 메커니즘은 내일 모레를 위해 내일도 희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여유를 저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의 여유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내일의 여유도 쓸 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간 여유로워 질 것’이라는 회색인간의 속삭임에 현혹된 현대인들은 오늘도 여유 없이 삶에 치이며 살아간다.
# 회색 신사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현대인들의 삶이 회색신사에게 현혹된 모모의 친구들과 비슷하다면, 현실에서도 회색 신사는 존재할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것도 소설 속 회색신사와 아주 유사하게 존재한다. 소설 속 회색신사는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간 저축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면 어디선가 나타난다. 그리고 “시간을 그렇게 낭비할 거냐”며 악마의 속삭임으로 사람들을 꾀어낸다.
우리 현실에서 이런 회색 신사의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불안’이다. 만족과 성공의 기준이 남들보다 한 푼이라도 더 벌고, 남들보다 한 평이라도 더 넓은 집에 사는 것이 되는 순간, 우리의 매일은 불안하다.
내가 쉬면 남들이 나보다 앞지를 것 같고, 내가 넘어지면 누군가 나를 밟고 일어설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의 여유만을 바라본 채 오늘의 여유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이렇게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불안이 찾아와 속삭인다. “남들은 지금 뛰고 있어”
다른 이들 모두 회색 신사의 말에 넘어갔지만 모모만은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모모가 가진 ‘시간’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유를 갖고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며, 때로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는 것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 그리고 각자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런 여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모모는 회색 신사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다” 책 속의 한 구절이다. 여유 없이 삶에 매몰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본인이 가진 시간의 주인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불안이 지배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모>는 우리에게 여유의 중요성을 알려줬다.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처음에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여유가 없다면 내일의 여유도 역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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