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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5살에 작곡 시작해 8살에 교향곡 완성한 천재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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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김미양] 오페라와 교향곡, 행진곡, 피아노 협주곡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협주곡, 미사곡 등 약 600여 곡을 작곡한 천재. 채 4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비운의 작곡가이자 악사들의 노래만 듣고도 음을 세분화한 절대 음감의 소유자.

천재성만큼의 지식을 가졌고, 지식만큼의 천재성을 가졌다 평가받는 유일한 음악가. 그는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입니다.

모차르트의 이름에 들어간 ‘아마데우스’는 라틴어로 신의 사랑을 받은 아이라는 뜻입니다. 모차르트는 이름에 걸맞게 신이 선물한 것 같은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는데요.

그는 5살에 작곡을 시작해 8살에 첫 교향곡을 완성시키기도 했죠. 하지만 그의 음악들이 단순히 천부적인 재능만으로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1756년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정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인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자신의 누나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건반을 배울 정도로 신동이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는 음악 감독의 일을 그만두고 아들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1762년 모차르트가 6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연주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음악 여행은 모차르트의 천부적인 재능을 더욱더 키워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모차르트는 10여 년 동안 뮌헨, 오스트리아, 파리,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다양한 곳을 다녔는데요.

런던에 머무를 당시에는 바흐의 아들에게 작곡을 배웠고, 이 때 모차르트는 첫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작곡한 교향곡과 협주곡에는 바흐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또 이탈리아에 간 모차르트는 당시 유명 오페라 작곡가였던 요세프 미츨리베섹 등에게서 조언을 받으며, 역사상 가장 비중 있는 음악학교,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의 회원자격을 받기도 합니다.

이후 로마에서는 마르티니 신부에게 직접 지도를 받으며 대위법 음악에 대한 공부도 하게 되죠.그리고 밀라노에서는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알바의 아스카니오>, <루치오실라> 같은 오페라를 잇달아 작곡합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모차르트는 궁정 음악가로 활동을 합니다. 이 시기는 모차르트가 음악가로서의 개성을 단련하는 시기였죠. 특히 이때 알게 된 하이든 형제의 새로운 작품으로 인해 모차르트는 고전파 음악가로서의 기반을 다집니다.

하지만 이 당시 궁정 음악가로 활동하던 모차르트는 괴팍했던 대주교와의 갈등으로 인해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떠나게 됩니다.

빈으로 떠난 모차르트는 전업 작곡가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어느 한 곳에 소속된 음악가가 아닌 프리랜서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죠. 당시 계몽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던 시기였기에 모차르트는 교회나 왕실의 의뢰를 받는 것이 아닌 본인의 의지에 따라 창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차르트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해 대성공을 거뒀고, ‘돈 조반니’도 프라하에서 초연하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모차르트의 이러한 행보는 향후 베토벤과 슈베르트 등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가던 모차르트는 음악적으로 큰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부와 명예를 쌓기도 했죠. 그런데...이렇게 한창 명성을 구가하던 모차르트는 35세의 나이에 갑자기 죽음을 맞이합니다.

모차르트의 죽음을 두고는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독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이 진실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죠.

‘천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재능을 더욱더 키우기 위해 여러 나라의 음악을 공부하고, 또 많은 음악가를 만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넓혀나간 모차르트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