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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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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승재] 문학이야기는 매주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의견을 공유함으로써 독자와 함께 소통하고자 만들어진 콘텐츠로, 책이나 글에 점차 멀어지고 있는 현대인들의 지(知)를 고취시키고자 제작됩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제작되는 콘텐츠인 만큼, 간혹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는 타인으로부터 착한 사람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말한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은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좋은 아들 혹은 좋은 친구라고 평가 받기 위해, 나의 기준이나 나의 생각보다는 타인의 기준과 반응에 따라 행동한다. 그렇게 나의 욕구나 소망은 내 안에 자꾸만 쌓여 간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 또한 일종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데미안의 첫 구절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로 시작한다. 싱클레어는 아버지와 종교, 도덕과 같은 외부 규율에 따라 말 그대로 ‘착하게’ 살아가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 규율들을 멀리하면서 ‘나’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이 소설은 시작하게 된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온전히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존재다. 싱클레어는 유년 시절 부모님으로 대표되는 선의 세계와 자신을 괴롭히던 크로머라는 악의 세계를 동시에 만나게 된다. 이 두 세계의 사이에서 혼란을 겪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도움을 받아 그 혼란 속에서 벗어나게 되어 ,두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된다. 그리고 이 이후부터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함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십자가에 매달린 도둑의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대화를 하면서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세계를 그냥 자기 속에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그것을 알기도 하냐가 큰 차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의 첫 불꽃이 희미하게 밝혀질 때 그 때 그는 인간이 되지.”라는 문구는 결국 타인의 세계, 사회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세계와 기준을 발견했을 때 그 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의 인간, 하나의 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가게 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이별을 하고 낯선 도시에서 방황한다. 싱클레어가 그동안 나만의 기준, 나만의 관점으로 살아왔던 것이 유년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크로머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때 싱클레어가 만나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 “새는 투쟁해서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결국 싱클레어의 방황은 나를 찾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옭아매는 생각과 내 내면의 목소리가 싸우는 투쟁의 과정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새가 알을 깨는 과정은 외부의 규율에 길들여진 내가 내 자신을 억누르는 방어막을 깨는 과정을, 그리고 아프락사스라는 신은 결국 새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오롯이 나만의 것이 존재하는 그 순결의 모습을 표현해낸 것이었다.

아프락삭스의 존재를 알게 된 싱클레어는 추후에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와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나면서 ‘아프락삭스’의 존재를 더 구체화시켜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극적으로 데미안과,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나게 된다. 

그 때 싱클레어는 자신이 그려낸 아프락삭스의 모습과 에바 부인이 흡사한 모습을 본 후 그녀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내면처럼 보이는 경험을 한다. 이 때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그동안 자신을 찾아 걸어온 길이 아름답지 않았는지 묻는다. 작가는 이 대목에서 자신을 찾는 과정이 새가 알을 깨는 과정만큼 치열하고 힘들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과정이었음을 암시한다. 

데미안의 마지막, 싱클레어는 전쟁에서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 야전 병원에서 다시 데미안과 마주하게 된다. 데미안과 대화를 나누던 중 싱클레어는 정신을 잃고, 다시 깨어났을 때 데미안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때 싱클레어는 이런 말을 남긴다.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 거기서 나는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내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싱클레어의 이 말은 결국 데미안이라는 존재가 결국 내 자신이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어린 시절 나만의 세계를 이끌어 준 데미안도,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아프락삭스와 닮은 에바 부인이 나와 동일하다고 느낀 것은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존재는 결국은 ‘나’뿐이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타인의 반응과 기준에 본인을 지나치게 맞추려고 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이 외부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본인이 자신을 찾는 험난하고도 아름다운 과정을 꿋꿋이 걸어가야 함을 <데미안>을 통해 우리는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