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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카드뉴스] 외국이 인정하고 보존하는 민족의 자존심,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김미양]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국가는 무력했지만 독립을 위한 민족의 열망은 강력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은 너무나도 무자비하여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은 순탄치 않았다. 때문에 주요 독립 운동은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직도 우리 독립 운동가들의 흔적이 해외 여러 곳에 남아있다. 독립에 대한 열망이 느껴지는 해외 유적지들을 함께 알아보자.대한민국 임시정부 (중국 상해)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 상해로 여행을 간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 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 식민 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설립한 곳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근원지이다. 현재는 중국이 관리하고 있으며 김구 선생 집무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료..
[지식용어] 일제가 옮긴 덕수궁 광명문, 8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가다 [시선뉴스 김태웅] 1938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옮겨졌던 광명문(光明門)이 80년 만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광명문의 원래 자리는 어디인지, 덕수궁 구석으로 옮기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덕수궁의 남서쪽 구석에 홀로 서 있는 광명문. 현재는 몇몇 유적들을 전시하고 비를 맞지 않게 도와주는 일종의 야외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본래 덕수궁 광명문은 왕이 드나들었던 문이었다. 덕수궁 남서쪽에 위치한 광명문 [출처_Pixabay] 덕수궁은 본래 경운궁이라고 불렸다. 1608년 조선의 15대 왕이었던 광조가 이 곳에서 즉위하면서 처음으로 경운궁이라고 명명했다. 세월이 지나 1896년 아관파천이 일어나고 1년 뒤, 러시아 공사관에 피해있던 고종이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겨 그해 9월 대..
[지식용어] 80주기를 맞이한 일제의 중국 잔학사, 난징대학살 [시선뉴스 이호] 1937년 7월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무력충돌이 일어나면서 중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 초기, 일본군은 북경(베이징)과 텐진 등 북부의 주요도시들을 비교적 손쉽게 점령하여 일본군 수뇌부는 3개월 만에 중국대륙을 점령하겠다며 큰소리를 칠 정도로 사기가 올라 있었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장제스의 저항이 매우 격렬하여 생각보다 어렵게 상하이를 점령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분노에 찬 일본군은 곧바로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으로 진군했다.이에 중국군 사령관 탕셩즈(唐生智) 장군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수도를 지키겠다"며 결사항전을 선언했는데 정작 12월 13일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고 난징성으로 쳐들어오자 탕셩즈는 휘하부대와 함께 전날 가장 빠르게 도망을 가 버렸다. 결국 피난을 가지 못한..